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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같은 것을 볼 수 있다면 <하나 그리고 둘>

왜 불행은 한꺼번에 오는 걸까. 삼촌의 결혼식 후 할머니는 팅팅이 잊은 쓰레기를 버리려다 사고를 당한다. 민민은 할머니의 사고 이후 슬픔에 빠져 살고, NJ의 회사는 어려워진다. 조용하게 불행이 찾아오는 동안에도 모두 각자 몫의 삶을 산다. 다만 다가오는 할머니의 죽음을 준비한다는 점에서 조금 그늘지고 힘이 빠진 채로.

첫사랑과 재회한 NJ는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서로의 세상은 다르다는 것은 느낀다. 30년 전 서로 같은 것을 보지 못해 도망친 그는 30년 후에 자신이 했던 방식으로 남겨진다. 젊은 시절에 그들이 가지는 감정은 그저 회한일 뿐, 그들이 다시 만나도 변하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우린 결말을 알면서 잘못과 실수를 반복한다. 제대로 상처받고 싶은 사람처럼 굳이 과거를 반복하는 두 사람을 도덕적이지 않다며 꾸짖을 수도 없다. 바르게 그은 선도 돌아보면 구불거리는 것처럼 티끌 하나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삶은 없다. 그냥 그렇게 사는 거다.

휘청거리는 어른들을 팅팅과 양양은 뒤에서 지켜본다. 아이들에게도 삶이 있다. 양양은 가족들의 뒷모습을 찍기 시작하면서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한다. "우리는 반쪽짜리 진실만 볼 수 있는 걸까?" 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카메라와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학교 일과 중에 필름을 사러 갈 정도로 양양에게는 가족들이 모르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할 일이다. 아마 영화의 배경은 양양이 가족들의 뒷모습을 가장 많이 본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얼굴이 아니라 각자의 고독을 담은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는 것을 양양은 찬찬히 알게된다. 별안간 물에 뛰어들고, 종종 엉뚱한 생각을 하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은 양양이다.

반면 누나 팅팅은 사랑과 우정을 통해 세상에 손을 뻗기 시작한다. 친구 리리와 패티 사이 예상치 못한 삼각관계에 휩싸인 데다 할머니의 사고가 본인 때문이라는 죄책감까지 커지면서 마음 속 소용돌이를 홀로 잠재운다. 모텔 문 앞에서 상대가 도망가 버려도 천천히 돌아가는 아이. 분노에 찬 말을 듣고도 문을 세게 닫기만 하는 이 아이는 앞으로 어떤 시간을 거쳐 어떤 어른이 될까. 나는 그가 비겁하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어른들에 가까워지길 바랐다. 혼자 꼿꼿이 서 있기보다는 불완전한 모습으로 기대어 살기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어른이란 건 성숙해진 상태가 아니라 가끔은 눈을 가리고 피하기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잘 몰라서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순간부터 우리는 종종 회피하고 헛손질하는 서로를 어느정도 감내해준다. 패티가 팅팅에게 이해 못 할 분노를 보인 다음 날, 패티는 여자친구 리리 엄마의 내연남을 살해한다. 집 앞에 있는 사건 현장을 지나는 팅팅은 괜찮아 보이지만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녀가 가졌을 안도감과 걱정, 후회는 앞으로의 삶에 더 자주 등장할 것이다.

유년 시절만의 고독이 있다. 복도를 질주하는 발 구름의 진동. 아무도 없는 집의 서늘함함. 우리였던 아이들의 찢어지는 웃음소리. 되짚어가다 보면 과거와 끝없이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난다. 하나 그리고 둘은 그 고독을 일깨운다. 앞만 보는 어른들에게 질문하면서 돌아갈 수 없는 유년기를 생각하게 한다. 동시에 이미 NJ와 민민에 가까워진 나는 양양과 팅팅의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로에게 말을 하고 너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야를 갈구한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보는 것을 너는 볼 수 없고, 네가 볼 수 없는 것을 나는 볼 수 없기에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주고 나의 부족함을 채워간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또박또박 글을 읽는 양양이 그 점을 서툴지만 정확히 짚어준다.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그들이 모르는 걸 알려주고 볼 수 없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시간은 앞으로만 가지만 우리는 서로의 뒷모습을 알려줄 수 있다. 그 마음은 미움보다는 다정함이고 관심이라고 믿는다. 나는 너를 보고 있어. 너의 뒷모습을 보고 있어. 하며. 그 마음을 꼭 믿고 싶을 때마다 이들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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