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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내 여름도 안 지나갔다

청소년기 설명하는 작품들은 괴롭지만 자꾸 보게 되고 대부분 조각이라도 공감이 된다. 여름이 지나가면을 보면서 자꾸 놀란 건 설명하기도 애매하고 나조차도 다 잊었다고 생각한 농어촌 지역 어린이의 삶을 너무 내밀하게 봤기 때문이다. 그냥 그 삶의 방식이나 환경이 까먹었던 (까먹고 싶었던) 것들이어서 더 심란했다. 남자 아이들의 이야기지만 그 배경과 묘한 아이들의 눈빛에서 떠오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피해 당사자였기 때문에 오히려 믿고싶은 것들이 있다. 아이들의 잘못과 판단은 짧다는 것. 그러니 그들도 살아가며 분명 나와 같은 경험으로 느낀 것이 있을 것이란 것. 그들을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 또한 그럴 수 있었다는 걸. 나도 권력의 우위를 느끼며 유년기를 보냈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기준이와 완전히 반대되는 형태로 이주를 했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동안 괴로운 동시에 가해자가 되기 힘든 구조에 오히려 안전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당시 가장 어렵고 난처했던 건 나를 둘러싼 사회 문화적 배경 변화와 너무 다른 또래 문화였던 것 같다. 그게 사람보다 더 무서웠다. 시시각각 변화되는 감각이 자꾸 나를 타인으로 만들고 사회에서 유리당하는 기분을 줬기 때문이다. 그 문제들의 본질은 내가 살아온 환경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영문 혹은 기준처럼 대담하지는 못했고 둔감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남으려는 영문의 강요된 무던함에 마음이 흔들거렸다.

오빠가 딱 영화 속 아이들 나이였을 때 왜 맞으면서도 같이 노는 걸까 궁금했다. 서로 폭력성을 주고 받으면서, 상처에 소금 뿌리면서 사는 방식이 최소한의 방어였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동등해지려고 애쓰는데 그게 전혀 안됐던 거구나. 진심으로 그를 연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자꾸만 속에서 울화가 올라온다. 돕지도 못하고 맞서 싸우지도 못하고 변호도 못했던 순간이 나만 기억하는 순간이 될 것을 알아서 그렇다.

여전히 한양 것이 되고 싶지 않고 스스로 발을 붙일 곳을 찾지도 않는다. 어떤 고인물이 된다는 것이 내게는 이상할만큼 역하게 느껴지고 두렵다. 다른 세계를 궁금해하지 않고 오직 내 세계만 남아버릴까봐, 타인의 고통에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고립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쉬운 야만이다.

쓰고 보니 내 여름도 안 지나갔다. 내 코가 석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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